본관이 경주인 아버지는 슬하에 6남3녀를 두셨는데 나는 그중 다섯째 아들, 그러므로 내겐 위로 

형 넷과 누나 둘, 그리고 아래로 여동생과 남동생이 하나씩이다. 그러나 큰형님들 셋은 6.25당시, 

맏형은 서울약대 졸업반, 둘째형이 서울사대 1 학년, 셋째형이 양정고교 5학년의 학생신분 이었

고……. 형들은 그 당시 서울에서 귀했던 염료(물감) 공장을 시작, 국방색과 기명색 등 을 국내 최

초로 만들었고, 국방색을 국방부에 납품하였으나 6.25의 발발로 지금껏 대금회수마저 못했다는 

것. 당시 한강인도교가 폭파돼 고향에 내려오지 못하다가 9.28 서울수복 3일전에 후퇴하는 북한

군에게 끌려간 후 한세대반이나 지난 지금껏 결혼은 물론 생사여부도 모르는, 그야말로 풍편에

조차 아무런 소식도 없는 이산의 아픔……. 6.25당시 남에 남은 6남매 큰누나는 여중1, 넷째형은

국5, 둘째 누나는 국3, 나는 여덟살인 국교1년생이었고, 여동생은 5살, 막내인 남동생은 3살이었

다. 지금도 강경읍사무소에서 호적을 떼어보면 6.25때 납북된 형셋이 실종으로도 처리하지 못한

체 그대로 등재돼 있다.

6.25 당시 셋 다 미혼이었고 큰형님이 지금 살아 계신다면 우리나이로 74세, 둘째는 71세, 셋째형

은 69세가 된다. 무심한 세월이다. 기운 가세에다 시골집에 살아남은, 될성부르지도 않던 어린 6 

남매를 두고 ……, 1950년 6.25로부터 1967년 늦은 봄 운명하실 때까지 아버지는 얼마나  "사회와

집단에 의해 분실되는 개인의 작고 소중한 것들을 되찾아 지키고자 했던가!" 작은 누이는 날더러 

9 남매중 유일하게 교단에도 서고 글도 쓰는 등 부모를 제일 많이 닮은 자식이라 하는데, 기실 아버

지는 다섯째 아들인 나를 그중 탐탁 치 않게 여기셨던 것이나 아닌지! 아버지를 닮는다는 것이 혈통

때문인지! 기대않던 자식쪽의 분발이 있어서인지. 여동생이 강경여중에 합격하고 내가 강경상고 학

비 50%면제 장학생으로 동시 입학할 때(1959년) 아버지는 남녀평등을 내세우시면서 여동생의 학

비만을 겨우 준비한 형편이었고, 이를 안 둘째형 친구이자 강경상고 재직중인 전종구 선생님의 도

움으로 [강상]에 입학한 나는 그 뒤 대학원까지 줄곧 고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일로 나는 토성

장학회를 운영하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중.고생을 7년간을 돕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나이 들어 조상의 행적을 살피어 기리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살아 남은 사람중 누군가

조상일을 할때 그 일을 하는 후손이  반듯이 선대의 기대를 모았던 사람이 아니였을 경우도 있다.

그리고 조상의 참혹한 실패의 경험이 후손에게는 성공의 디딤돌이 되는 사례도 많이 보게 된다.

일제때 고학으로 일본동경유학길에 올라 일본대학과 상지대학을 다니시고 6.25 이후까지 금지 

동명학원·강경북중등 육영사업을 계속하시던 아버지와, 해방직후 대학에 다니던 아들들과의 

그 시대의 세대간·부자간의 교감에 대하여 나는 자세히 가늠할 수 없다. 그리스는 로마가 되었

고 러시아 계몽운동은 러시아 혁명이 되었듯이 고상하고 이상적인 것이 조야해지는 것을 우리 

는 역사에서 흔히 본다. 6.25로 이산가족이 되고, 보릿고개의 세월을 변변치 못한 어린 6남매를 

키우며……. 그러나 아버지는 쉽사리 절망을 되풀이하면서도 희망이라는 작은 풀꽃들을 마지막 

까지 옹호하고자 했다. 60년대 중반 당신의 몸이 성치않으신데도 텃밭을 처분하여 상경, 취직도

못하고 있던 자식들에게 방을 구해 주시면서 내게 넷째형(현재는 사실상의 장남)의 신세를 지는

일이 없도록 특별히 깨우쳐 주시고 내려가신 뒤, 시골집에서 화병으로 몸져 누우신 후  아무도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체 운명하실 때까지 의 아버지…. 이제 저 승에서 형님들 소식이나 들으시

는지…….  지금도   "몸은 개천에 있더라도 맘은 하늘에 두라" 이르시고 계신지……. 이루고 거둔

삶만이 인생이 아니다. 끝내 소망을 이루어내지 못하는 아쉬움과 슬픔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삶

의 토양인가. 나는 기쁠때나 슬플때나 늘 내속에 살아 있는 아버지를  본다.  몸은 비록 갔으나

보내지 못하는 살아남은 자식은 당신이 남기신 소망의 불씨를 오래도록 간직한다.